2026 박인환상 시 부문 수상자로 <파리 팔휘 토끼 톡휘 다리 달휘>(창비)의 김영승 시인이 선정됐다. 시 심사위원단(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남송우 부경대 명예교수·손택수 시인·안경원 시인·이찬 고려대 교수)은 수상작을 두고 “정통 문법의 자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를 구성하는 무수한 대극(對極)의 구조를 시의 행간과 모서리에 깃들게 하는 놀라운 미학적 혁신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박인환 시인의 문학작품을 연구하는 논문을 대상으로 한 문학 부문 수상작(심사위원단 박상수 명지대 교수·이광호 문학평론가·오문석 조선대 교수)에는 김시홍 평론가의 ‘리얼리즘이라는 보증: 박인환 비평사와 시적 형식의 권리’가 선정됐다. 영화평론 수상작(심사위원단 박기복 강원대 교수·박진형 경희대 교수·윤성은 영화평론가)으로는 고민규 평론가의 ‘영화의 무의식으로서의 현실: <고독한 오후>와 알베르트 세라의 데카당스 시학’이 뽑혔다.
박인환상은 박인환 시인(1926~1956)의 문학정신을 기리려 2020년 제정한 상이다. 강원 인제군과 인제군문화재단, 경향신문, 박인환시인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공동 주관한다.
상금은 시 부문 3000만원, 문학 1500만원, 영화평론 500만원이다. 시상식은 오는 12일 인제군에서 개최되는 박인환문학축제에서 열린다.
2026 박인환상 시 부문 수상자 김영승 시인. ⓒ강용석
13년 만에 시집…올해 등단 40년
선과 악, 미와 추, 전통과 혁신 등
수많은 대극 통해 깨달음을 추구
“펼침화음이자 두문자 같은” 제목
표지 그림은 고1 때 그린 자화상
오리지널 바다이야기
“박인환 ‘세월이 가면’ 오래 기억
마지막으로 쓴 ‘서시’라고 생각”
2026 박인환상 시 부문 수상작으로 <파리 팔휘 토끼 톡휘 다리 달휘>(창비)가 선정됐다. 김영승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특유의 파격과 해학으로 세계를 다르게 바라보는 방법을 제시한다. 시인은 1986년 ‘세계의 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반성> <車에 실려가는 車> <취객의 꿈> <흐린 날 미사일> 등을 냈으며 현대시작품상, 지훈문학상, 형평문학상, 이용악문학상 등을 받았다.
올해 시 부문에는 시집 13권이 후보에 올랐다. 심사위원단은 <파리 팔휘 토끼 톡휘 다리 달휘>에 대해 “대극의 구조 속에서 신성과 세속, 존재와 존재자, 거시와 미시, 전통과 혁신, 역사적 삶과 나날의 삶이 그침 없는 변화를 이루면서 우주적 차원의 길항 운동을 거듭한다”며 “이 시집이 새롭게 구축한 대극의 무수한 길항 운동과 강유상추(剛柔相推)의 우주적 리듬은 시의 전통적 본질과 혁신적 첨단을 동시에 가로지르면서, 그것 전체에 스민 존재론적 통섭 운동을 완결 짓는 빼어난 예술적 성취를 이룩한다”고 평했다.
시집은 인간사에 놓여 있는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깨끗함과 더러움 등 수많은 대극을 단순히 극명히 드러내는 것을 넘어서 이를 통해 더 나아간 깨달음을 추구한다.
“비가 오니/ 먼 데가 없어서 좋구나// 가까운 데가 없어서 좋구나// 먼 데도/ 가까운 데도/ 없어서 좋구나// 먼 데는 어디고/ 가까운 데는 또/ 어딘가 비가 오니”(‘비가 오니’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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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뒤집어씌워진 그 모든/ 관념과 이미지의 층층/ 그 난공불락의 지층을 걷어내고/ 구각(舊殼)을 탈피하고/ 그냥 파리로// 오늘/ 이 비 오는 날// 파리는 이제 나에 의해서는/ 팔휘로/ 새로 태어났다 그 명명이/ 신생이며/ 영생이다 팔휘는”(‘팔휘’ 중)
시인은 등단 후 쉬지 않고 작품 활동을 해왔는데, 이번 시집은 2013년 발표한 <흐린 날의 미사일> 이후 13년 만으로, 이례적으로 긴 시간을 두고 나왔다.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에 대해 시인은 경향신문과 서면 인터뷰에서 “시집을 묶어 내는 데 긴 시간이 걸린 것이 아니라, ‘시집을 낼 때가 되어 내게 되었다’고 답하겠다”며 “올해 1월부터 릴케의 시 ‘가을날’의 앞부분 ‘주여, 때가 왔습니다’를 일부러 독일어로 ‘헤르, 에스 이스트 자이트’라고 암호처럼 중얼거렸다”고 말했다.
시집 제목에 대해서는 “‘파리 팔휘 토끼 톡휘 다리 달휘’라는 열두 글자가 음성학적으로, 음운적으로, 주술적 언어의 공감각적인 분산화음, 즉 아르페지오처럼 분산되는 펼침화음 같고 한 글자 한 글자만이 아니라 그 열두 글자 전체가 하나의 신비한 두문자(頭文字·낱말의 머리글자를 모아서 만든 준말) 같다 해 정한 것”이라고 했다.
시집엔 그의 고교 시절부터의 서사를 정리한 산문이 있는데, 그의 시를 이해하는 하나의 단초가 될 수 있다. 표지 그림은 시인이 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74년 그린 자화상으로 이 역시 산문의 내용과 이어지며 시집 전체와 연결성을 보여준다.
시인은 오랜만에 발표한 작품으로 상을 받은 데 대해 감사 인사를 전하며 박인환 시인에 관한 추억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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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1974년 박인환이라는 시인을 처음 알았고, 2년 뒤 박인환의 시 ‘세월이 가면’에 곡을 붙인 동명의 가요를 가수 박인희의 버전으로 듣게 됐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세월이 가면’ 중)
시인은 특히 “내 가슴에 있네”라는 구절을 오래도록 기억했다. 오래된 책을 버려야 해 정리할 때면 고개를 숙여 책에 인사하고는 “내 가슴에 있네”라고 중얼거렸다. 시작 활동과 함께 대중에게 시를 강의했는데, ‘박인환’을 주제로 삼은 일도 있다. 수강생들과 함께 박인환문학관을 찾기도 했다.
그는 “시인들은 일생 단 한 편의 ‘서시’를 남기는데, 대개는 그러한 시적 가치관과 세계관, 그리고 사생관(死生觀)으로 살다 간다”며 “박인환의 마지막 시 ‘세월이 가면’은 윤동주의 ‘서시’나 친구 김수영의 ‘서시’, 프랑시스 잠의 ‘서시’ 같은, 박인환이 마지막에 쓴 ‘서시’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어 “‘그 눈동자 입술이 내 가슴에 있는데 그 사람 이름을 잊었다’ 그 모순어법이 은하수 같은 순간”이라고 말했다.
시인은 올해 등단 40주년을 맞이했다. 그간 ‘당신의 인생에서 시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무수히 들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시를 써오고 이제 곧 칠순을 맞이하는 나이가 되어 그가 떠올린 시란 “노아”와 “지옥의 문”이다. 그는 “구약성서의 인물인 노아(Noah)는 히브리어로 ‘위로와 안식’이라는 뜻이다. 단테와 로댕은 ‘지옥의 문’에서 ‘이 문에 들어서는 자는 희망을 버려라’ 했다지만, 나에게 있어 시는 희망이다. 죽어서까지도”라며 “시가 많은 사람들의 위로와 안식, 그리고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어디고/ 가까운 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