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어느 판사의 경험담. "퇴근길 편하게 집에 가려고 택시에 탔는데, 룸미러로 운전사와 눈이 마주친 순간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얼마 전 내 법정에 나왔던 그 피고인이…" 판사는 집 위치가 노출돼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멀찍이 떨어진 길가에 황급히 내렸다고 했다.
부산의 한 판사는 지하철을 탔다가 승객들 틈에서 자신이 유죄판결했던 피고인을 마주쳐 당황했던 경험이 있다. 그는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도망치듯' 내렸다고 한다. "식은땀이 나더라고요."
전직 대통령 사건을 담당했던 재판장이 식당에 갔더니, 모르는 사람이 불쑥 얼굴을 디밀며 "맞지?"하더라는 일화는 법원에 널리 퍼진 얘기다.
판사들이 사건 당사자 등으로부터 신변 위협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는 늘 있어왔지만, 요즘 법관들을 만나보면 부쩍 걱정이 커진 듯하다. 형사 재판 중계가 늘어나면서 SNS 등에 판사 신상이 노출되고, 재판을 둘러싼 사회 갈등과 진영 대립이 심화하면서 '예측하기 힘든 위험'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 사건을 담당하는 판사 개인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증가는 포털 검색량이 보여준다. 네이버 데이터랩에 따르면 2026년 1월 16일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체포방해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한 백대현(사법연수원 32기) 부장판사의 검색지수는 가수 아이유의 약 4.2배를 기록했다.
모바일 바다 이야기
한덕수 전 국무총리 내란 사건 1심 선고일 재판장 이진관(32기) 부장판사의 검색량은 아이유의 6.2배였고, 윤 전 대통령 내란 우두머리 사건 1심을 선고한 지귀연(31기) 부장판사는 8.3배까지 치솟았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대형 재판이 중계되고 나면 담당 법관들이 마스크를 써도 사람들이 얼굴을 알아본다"고 말했다.
판사 개개인에 대한 물리적 위협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다단계 사기 사건 재판을 했던 서울지역 한 판사는 "집 근처에 내 얼굴이 들어간 현수막이 나붙어 섬뜩했다"고 말했다. 판사가 근무하는 법원 앞 현수막이 아니라 집 앞에 현수막이 붙는 것이다. '신상털이' 가능성을 보여준다.
정치적으로 갈등이 첨예한 사건을 담당한 판사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무더기 소송을 당해 답변서를 제출하러 다니느라 애를 먹었는데, 정작 걱정은 다른 데 있었다고 한다.
법원 관계자는 "소송이 접수되면 상대방에게 집 주소가 노출될 리스크에 직면하게 된다"며 "법관들의 주소 노출을 막기 위해 법원 직원들이 송달 문제 등을 따로 관리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앞서 특정 정치인 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아무개 판사 출퇴근길에 잡히면 참수한다'는 글을 올려 경찰이 수사에 나섰고, 비록 소동으로 끝나긴 했지만 지난 8월 26일엔 전국 40여 곳 법원에 사제폭탄을 설치했다는 협박 이메일이 접수되는 일이 있었다
손오공게임
.
법원 판사들이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한 사례는 2023년 2건, 2024년 1건에 불과했지만, 2025년엔 12건으로 크게 늘어났다. 2007년 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은 당사자가 판사를 석궁(石弓)으로 공격한 사태가 재발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주요 사건을 담당하는 법관의 신변 보호를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법조인들이 지적하는 이유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법원조직법 55조의 2에 따라 법원 보안대원에게 유형력 행사 권한이 있지만, 이는 주로 법원 내부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법원장을 지낸 변호사는 "사전 위험도 평가를 통해 해당 사건을 담당하게 될 재판장 등에 대한 선제적 보호조치가 이뤄져야 하고, 법원 보안 인력이 경찰과의 협업 활성화 등을 통해 대응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판사 개인의 정보 노출을 막는 정보보호 시스템을 도입하고, 법원에 법관들만 이용할 수 있는 출입구 및 주차공간을 마련하는 등 '안전 장벽' 구축에 나서고 있다.
만일 대비 '법정비상벨'있다
판사석 법대 아래 등에 설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안정감"
2026년 7월 서울고법 한 법정에서 소송 당사자가 재판부를 향해 폭언과 욕설을 퍼부으며 난동을 부렸다. 법정 관계자가 긴급히 법정 내 비상벨을 누르자, 신호를 확인한 보안관리대가 출동해 난동을 부린 사람을 제압했다
사이트 바다이야기게임
.
앞서 6월 서울중앙지법 형사법정에서는 증인이 심정지로 쓰러지자, 비상벨 신호를 받고 출동한 보안대원이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해 생명을 구하기도 했다.
법정 내 위급 상황을 대비한 비상벨은 판사가 앉는 법대 밑을 비롯해 법정 경위, 형사재판 참여관, 보안관리대원 좌석 인근에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설치돼 있다. 이 벨은 법정 밖 보안관리대실과 직접 연결돼 있다.
법원 민원실과 구치소 접견실 변호인석에도 유사한 비상벨이 설치돼 있다. 부장판사 출신 송인경(사법연수원 34기) 변호사는 "판사 시절 손이 닿는 곳에 비상벨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심리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해외 법정에서도 유사한 안전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미국 법정은 판사석 밑과 서기석, 보안요원 대기석에 무음 비상벨이 설치돼 있으며, 버튼을 누르면 현장 보안요원의 무전기로 직접 신호가 전송 된다.
미국 법정에서 실제 발동 사례를 경험한 줄리어스 남 미국 라시에라대 교수(전 미국 LA 연방검찰청 검사)는 "버튼을 눌러도 무음이라 법정 안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보안관이 즉시 대응한다"고 했다.
그러나 비상벨만으로 법정 내 안전을 전적으로 담보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원장을 지낸 한 변호사는 "비상벨은 이미 위험이 발생했거나 임박한 단계에서 작동하는 사후 대응 수단일 뿐"이라며 "비상벨 설치만으로 법정 안전이 충분히 보장된다고 보기 어려운 만큼 선제적인 보안 대책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했다.
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