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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 부산교대 교수
AI 시대의 교육을 말할 때 우리는 흔히 기술을 먼저 떠올린다. 인공지능을 수업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학생들에게 어떤 디지털 역량을 길러 줄 것인가를 묻는다. 물론 중요한 질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기술이 빠르게 변하고 가치관이 다양해지는 시대에, 교육은 무엇을 기준으로 학생을 성장시켜야 하는가. AI 시대 교육의 방향은 새로운 기술의 도입에서만 출발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가 함께 받아들일 수 있는 교육적 가치의 공통분모를 찾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다. 한 사회가 다음 세대에게 어떤 삶의 태도와 행동 기준을 물려줄 것인가에 대한 공적 약속이다. 과거에는 산업화, 근대화, 국가 발전과 같은 목표가 교육의 방향을 비교적 분명하게 이끌었다. 그러나 오늘날 학생들은 학교 안팎에서 수많은 정보와 가치관을 접하며 살아간다. AI와 디지털 기술은 이러한 변화를 더욱 빠르게 만들고 있다. 이런 시대에 특정한 가치를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교육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그렇다고 교육이 아무 기준 없이 각자의 선택에만 맡겨져서도 안 된다. 서로 다른 입장을 인정하되, 함께 지켜야 할 최소한의 공통 가치가 필요하다.
그 공통분모는 권리와 의무, 자유와 책임, 공정과 배려의 균형에서 찾아야 한다. 학생은 자신의 권리를 존중받아야 하지만, 동시에 공동체 안에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을 책임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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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학생을 존중해야 하지만, 교육활동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전문성과 권한도 보장받아야 한다. 학부모는 자녀의 교육에 참여할 권리가 있지만, 학교교육의 공공성과 공동체적 기준도 함께 존중할 필요가 있다. AI 시대의 인재는 기술을 잘 다루는 사람에 그치지 않는다. 권리와 책임의 균형을 이해하고, 타인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 。에서 초등교육의 특수성은 매우 중요하다. 초등학교는 학생이 인간과 사회, 자연과 공동체를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배우는 공간이다. 기본 생활습관, 타인과 관계 맺는 태도, 공정과 정의에 대한 감각, 약자에 대한 배려, 배움에 대한 긍정적 경험이 이 시기에 형성된다. 초등교육의 전문성은 단순히 어린 학생에게 쉬운 내용을 가르치는 데 있지 않다. 인간 성장의 기초를 세우고, 학생이 자기 삶을 존중하며 타인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공정과 정의도 이 관。에서 다시 보아야 한다. 공정은 모두에게 똑같은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출발선이 다른 학생들이 실제로 배움에 참여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마련하는 일까지 포함해야 한다. 장애 학생, 특수교육 대상 학생,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단순한 복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교육이 모든 학생을 성장의 주체로 인정하는가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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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지원, 전형 확대, 맞춤형 교육지원, 전문 인프라 확충은 사회적 약자의 역량을 키우는 교육정책의 중요한 기반이 되어야 한다.
교육과정과 교과서도 이러한 가치의 공통분모를 학생의 삶과 연결해 구체화해야 한다. 교육과정이 미래 역량, 디지털 소양, 시민성, 공동체 가치를 강조한다면, 그것은 문서의 표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AI, 디지털 사회, 생태 위기, 다양성, 노동과 삶, 민주주의와 시민성 같은 문제를 학생의 실제 경험과 연결하여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교육과정은 한 사회가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중요하게 가르칠 것인가를 담은 공적 약속이며, 교과서와 수업은 그 약속을 학생의 삶 속에서 경험하게 하는 장치가 되어야 한다.
민주시민교육 역시 추상적인 구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 시민성, 공정, 책임, 배려는 누구나 말하지만 그 의미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그래서 학교교육은 공유 가능한 가치의 틀을 세우고, 이를 교실 수업과 생활지도, 평가와 학교문화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교육은 흔적을 남겨야 한다. 강을 지나간 배가 떠나고 나면 물결은 다시 조용해진다. 그러나 교육이 그렇게 아무 흔적 없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 수업이 끝난 뒤에도 학생에게 타인을 대하는 태도, 다시 배우려는 힘, 자기 삶을 성찰하는 능력이 남아야 한다.
AI 시대의 교육은 또한 ‘탈출구가 있는 교육’이어야 한다. 학생이 선택한 학교나 진로가 자신에게 맞지 않을 수 있다. 성장 과정에서 관심과 특성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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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한 번의 선택으로 인생이 결정되는 교육은 바람직하지 않다. 학생이 고통받고 있다면 부모의 기대나 체면보다 학생의 상태를 먼저 보아야 한다. 방향을 바꿀 수 있고, 다시 배울 수 있으며,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제도적으로 전학, 전과, 재교육, 평생학습의 길이 있다고 해서 충분한 것은 아니다. ‘탈출할 수 있는 교육’과 ‘실제로 탈출하기 쉬운 교육’은 다르다. 다시 시작하는 선택이 실패의 낙인으로 남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탈출구가 아니다. 실패와 전환을 성장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제도와 문화가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다시 배울 수 있는 교육은 기회를 한 번 더 주는 것을 넘어, 학생이 자신의 삶을 새롭게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다.
결국 AI 시대 교육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가치이다. 변화가 빠를수록 교육은 인간에 대해 더 깊이 물어야 한다. 어떤 가치를 함께 지킬 것인가, 어떤 학생을 길러낼 것인가, 어떤 삶을 좋은 삶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갖는 교육이 아니다. 서로 다른 입장을 인정하면서도 함께 지켜야 할 최소한의 교육적 공통분모를 세우는 교육이다.
AI 시대의 교육은 학생을 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일이 아니다. 학생이 권리와 책임을 함께 배우고,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며, 실패 후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기술은 그 과정을 돕는 수단일 뿐이다. 교육의 방향은 결국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합의에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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